백두대간 5구간 중 삼도봉 우두령 역산행
2009. 1. 11. 일
산행구간: 우두령 → 화주봉 → 밀목재 → 삼도봉 → 석기봉 → 물한계곡
산행거리 : 16.7 km 10:47 ~ 17:11 6시간 20분
날씨 : 맑은 후 점차 흐리고 가는 눈발. 날씨 -11℃~-3℃
며칠째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이 계속된다. 지난 번 삼도봉까지의 구간에서도 익숙지 않은 산 속의 추위에 힘들었느데, 그때보다 훨씬 추운 날씨라 막상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버스는 대화역에 5-6명의 동행을 싣고 출발한다. 창밖 찬 새벽공기 속에 도심이 을씨년스럽다. 오늘 산행은 44명 만차다. 주엽역을 지나 백석동 쯤을 지나니 사람들의 입김으로 창에 성에가 서려서 바깥이 안 보인다. 버스가 난방이 잘 되지만 유리 창 주변으로는 얇은 얼음으로 엉킨다. 오랜만에 차창에 낀 성에를 보게 된다. 동 태평양의 라니뇨 현상이 이번 동아시아와 서유럽에 몰아친 한파의 주범이라고...
맹추위는 그러나 저 시베리아 툰드라 원시림의 의 한냉 건조한 공기를 동반하여 오기에, 늘 매연에 찌든 대기를 모처럼 맑고 싱싱한 대기로 바꾸어 준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차고 건조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마실 수 있게 한다. 정신을 버쩍 들게 한다. 우리 몸 안의 찌든 찌꺼기를 정화해 주는 느낌.
기흥 휴계소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황간휴계소를 거쳐 10:40경 우두령(질매재)에 도착. 차 안에서 미리 산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한다. 차림은 되도록 가볍게, 점심도 행동식으로 간단히. 등산 초기 종아리에 오는 경련성 통증을 예방하기 위해 근육통을 완화하는 겔타입의 연고제도 발라두었다. 우두령 기념석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능선을 타기 위해 오르막을 오른다. 나는 아직 다른 일행들보다 좀 더 부지런해야 산행 보조를 맞출수 있다.
40여분 비탈길을 오르니 저 만치 1058봉에 이어지는 화주봉이 보인다. 초입 등산로에는 갈잎이 수북이 쌓이고 밑에는 언땅이어서 발이 미끄러지고는 했는데 이제부터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얼어붙은 곳도 있어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쉴 때, 눈 앞에 펼쳐지는 참나무 숲은, 어떤 신비스런 적막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참나무 숲에 신들이 기거한다고 했을까?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참나무들은 비탈진 경사면에 그대로 수직에 가깝게 서 있다.
정상부근의 가파른 비탈길은 눈이 수북이 쌓여서 걷기가 힘들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욱이 눈 속에 일정한 보폭으로 남아 있다. 그 발자욱 따라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편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취...
오늘 산행도 반농사는 지은게다. 첫 걸음을 옮기고 그 다음에는 내 몸에 맡겨 버리고, 관성의 법칙에 따른면 된다.
용하게도 오랜 세월 게으름에 익숙했던 내 몸이 차츰 나태함을 털어내고 힘든 대간길 산행을 받아들인다.
화주봉(석교산)을 뒤로하고 맞은편 1172봉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이 눈안개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다. 오늘의 진로는 서남방향. 정상 부근의 세찬 바람에 집에서 미리 준비한 백두대간 지도와 차 안에서 나누어 준 오늘의 구간 개념도를 꺼낼 엄두가 안난다. 개념도.. 목표로 한 오늘의 산행구간에서 내가 지금 어느 지점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현재의 좌표를 머릿 속에 가늠하는 공간인지 능력. 그것이 개념이 잡힌 것이라 할 때,. 그것이 많이 부족한 처치다. 기계痴에 사랑痴 게다가 空間認知痴.... 말이 되나? 모자람이 너무 많구나...
가파른 1172봉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지나온 화주봉 능선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앞서간 동행을 만나려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능선길을 내달았는데, 아무도 없다. 몇 차례 덕산재와 삼도봉에서 출발한 등산객들과 교행을 할 뿐 내내 혼자 걷는다. 날씨는 변화 무쌍. 바람이 몰아치며 하늘이 어두워지다가 언뜻 파란 하늘이 드러 나기도 하고...세찬 능선 위의 바람에 눈가루가 날리며 역광에 눈가루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바람을 가릴 곳을 찾아 간단히 요기를 할 장소를 물색하며 몇 군데를 지나치고 나서야 능선 길 아래, 참나무 낙옆이 수북이 쌓인 비탈에 자리를 잡고, 빵과 과일을 뜨거운 물에 곁들여 먹는다. 준비한 복분자술을 꺼내 신년 첫 대간길 산행을 자축한다.
'우보! 한 잔 하시게."
" 무지, 자네도 한 잔."
" 건용아, 너도 한 잔 해라!" 도합 세 잔. 작년 해남성당 주임신부가 가르쳐 준 自酌요령.
추위와 짧은 겨울 낮. 산행의 바쁜 일정에 어데쯤인지 가늠도 못한채 봉우리를 넘고 능선을 타고 밀목재에 도착.
삼각점이 있는 1123봉. 나중에 지도를 보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삼각점을 조금 지난 곳에서 서편으로 바라본 민주지산 능선. 오른 쪽 봉우리가 민주지산이렸다.
삼마골재 鞍部에 앞서간 선두가 미나미골로 하산하라는 화살표지를 땅 위에 돌로 지둘러 놓았다. 내려가야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민주지산 정상을 밟아야지? 하며 결정을 못한다. 3시 이전에 이곳에 도착하면 민주지산까지 가도 된다고 차안에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동행도 없고 날씨도 만만찮고... 일단 삼도봉까지...
삼도봉에서 서편으로 바라 본 석기봉 그리고 그 머 뒤편 민주지산. 가는 눈 발이 거세지는 않은데 그래도 끊임없이 내린다. 산 아래 계곡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도 차츰 구름 속에 가려지고 사위가 점점 어두워진다. 마치 일몰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만용을 부릴 필요는 없다. 또 먼저 도착한 일행들에게 폐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지만 삼마골재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1.4km의 석기봉까지 일단 갔다가 그곳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남쪽 무주군 쪽. 지난 번 구간의 능선길 봉우리들. 저 멀리 백수리 산.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면하는 삼도봉 위의 화합탑. 충북쪽에서 지난 번 지나온 무주방향으로 한 컷.
산죽이 늘어선 능선 위의 눈길. 고즈넉한 오솔길 .
석기봉 아래서 바라 본 삼도봉
석기봉 정상 바위 옆에서 맞은 편에서 숨을 몰아쉬며 올라 온 경상도 사내에게 한 컷을 부탁.
아쉼기는 하지만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눈길을 주고는 되돌아 내려선다. 이제는 민주지산 쪽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의 행렬도
모두 끊긴 듯 하다.
석기봉 정상에서 500m 다시 되돌아 내려와서 은주암골계곡의 너덜지대를 지난다. 가는 눈이 내리는 적막한 계곡길을 한시간여
혼자 걸어 내려가며 행복했다. 아무 생각없이 적막의 공간에 함께 합류. 차고 맑은 공기를 숨쉬는 것이 희열이었다.
ㄱ
계곡 너덜길 걷는 중에 눈에 덮인 하산길 가운데 아람드리 나무가 불쑥 막아서고는 한다.
아름다운 한겨울 계곡 속에 외롭게 서서 하늘로 가지 뻗은 나목. 다 벗어버리고 떨쳐버리고... 찬 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나무 이상의 어떤 교감을 느낄 수 있는 格으로 느껴진다.
이번으로 5구간 빼재에서 우두령까지를 3회에 나누어 완주. 점점 내 몸에 대한 믿음.
조금씩 더 단련되는 내 몸. 강 추위 속에 뛰어드니 차라리 추위가 물러나는 느낌. 숨이 턱에 차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드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