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골 時祭(墓祀) 풍경
아침 일찍 작은아버님을 찾아뵙고 오늘 시제에 참석하여, 이리 저리 하라는 제례절차에 대한 하교를 받고 오늘 비번인 원광애비를 대동하고 저울골 묘막에 도착, 일가들과 수인사를 나누고 도포를 차려입고 시제를 올릴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 산을 오른다.
60년대 초등학교시절 몇 번, 그리고 대학 1학년때 아버지를 따라서 왔던 기억. 그리고 3-4년전 완용.안용과 함께왔던 적이 있다. 10년에 한 번씩이나 왔을까? 그나마 늘 건성으로 참여를 했으니 직계할아버지 묘소가 어디고 어딘지 알 턱이 없고 숙부께서 종친회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셔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만 들었으니...
아버님 어머님 묘소가 있는 산자락 우측편 복숭아과수원을 지나서 낙향산소 회석공파 "세웅" 9世 15대조 님의 墓所를 향한다. 지게에 祭需를 지우고 도포를 입고 오르는 일가들의 모습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전통의 모습으로 늦가을의 숲길 사이로 새삼 소중한 정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깊어가는 산 등성이 연전에 발생한 산불로 소나무는 다 타버리고 민둥산이 되었다.
년전에 어떤 기회로 이곳을 올라왔을 때, 산불로 모든 수목이 타버려 황량하였는데, 아직 조림이 제대로 안 되었고 잡목득이 자라지만 그런대로 그때의 황량함은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자연의 복구력이다.
이참에 계획조림을 하여 수목장을 할 수 있는 종친회의 수목공원을 조성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장사랑" 낙향할아버지의 품계이신데, 조선시대 종구품의 문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孺人"은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 神主에 쓰이는 존칭이니 ?? 벼슬을 하신 명예. 그게 현재에서 무슨 대단한 의미일까만. 굳이 벼슬작위를 비명에 새기고 '유인'이란 존칭을 새겨 앞뒤가 맞지 않는 형국.
이곳 묘소는 얼핏 풍수에는 문외한인 내게도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곳이다. 아쉽지만 좌청룡 우백호에 앞에는 북서쪽에서 내닫는 서면의 산줄기와 삼악산이 보이고 이 산 뒤로는 고탄고개의 춘천을 감싸안는 산줄기가 진산의 형국을 하고있다.
시은공파 종친회 회장님과, 회석공의 형제분이신 월농공파, 지곡공파 종친회 회장님들이 참석하셨다.
회석공의 장남 '渫'자 十世 할아버님의 직계 정용 일가형님 부자. 25世 '源'자 돌림의 자손은 이 부자의 젊은 아들이 유일했다. 과연 우이세대의 뒷세대가 이런 전통의 의례를 지속하여 대물림할 수 있을까?
제수를 차리는 동안 묘소 한켠 옆에서는 산신제가 치러지고.
제수가 차례차례 진설되고...
정용씨가 초헌 그리고 내가 '渡'자 작은 할아버지의 자손으로 아헌을 드렸다.
회석공의 제사를 마치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는 일행. 늦가을의 보슬비 속에 아름답다.
이어서 9세 '세웅'할아버지의 두 자제분 중 장남이신 '渫'자 십세 할아버지에 대한 제사.
'宜人'의 존칭은 정,종 6품의 문무관의 아내에 대한 봉작이니 이 할아버님은 벼슬이 6품에 이르셨다.
묘소 앞은 산돼지에 의해 잔디가 마구 파헤쳐졌다.
잠시 俯伏하여 告祝을 하고.
이어서 우리 직계 이신 십세 "渡'자 할아버님의 묘소를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찾았다.
아버님과 어머니 묘소의 윗단에 위치하고 있다. 작은 아버님이 새겨넣으신 공의 공적에는 벼슬에 뜻이 없고 자연과 유유자적하며 덕을 함양하신 덕망있는 분이시었다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올미 산소 부근에 터를 잡고 사셨고, 아직도 그 분이 정자를 세우고 풍류를 즐기셨던 그 송림은 보존되어 있다.
성격이 밝고 축문을 구성지게 고하는 "承"자 돌림의 집안 아저씨들.
"태용"이 작은 할아버지 손을 대표하여 초헌을 드리기 위해
분향한다.
과연 이 전통의 의례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十世 할아버지 묘소 두 단 아래, 아버님 어머님 묘소에는 이번 추석에 완용이 다녀가며 놓아 둔 국화꽃이 아직 피어있다.
이어서 묘막에서 제수 차림표에 따라 제례를 진행한다.
음력으로는 아직 시제를 드릴 시기가 아니지만 우리 종친회에서는 11월 첫 주 일요일을 시제일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늘 제례를 지내는 한 켠 옆에서 지켜만 보던 것이 이제는 耳順의 年輪이 저만치, 우리 세대까지 이 의례를 지켜가며, 다음 세대에 어떤 형식이든 전수해주어야 할 그런 위치에 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변하는 사회각 분야의 변화, 젊은 세대들의 앞 세대와는 판이한
이질적인 가치관 속에서 과연 이런 전통 관례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시 된다.
....
음복술에 취해서 처가에 들러 한잠 자고 귀가길에 올랐건만 하남시에서 음주운전에 적발되어 면허정지가 되었다. 지하에 계시는 조상님들이 내게 술마시는 것에 대한 절제와 행동거지의 자중을 훈계하시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