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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追憶 속에 살아 있는 꿈의 白頭大幹(2009년 4월 26일)

後凋1 2009. 4. 27. 10:32

追憶 속에 살아 있는 꿈의 白頭大幹 (2009년 4월 26일)

 

구 간 ; 신의터재(어산재.280m)-윤지미산(538m)-화령재(25번국도,320m)-봉황산(740m)-비재(비조령,320m)

일산 하나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

 

 신의터재에 도착하자 몸풀기 운동과 산행준비에 바쁘다.

운동은 항상 오래동안님께서 지도 하신다.

 묵은 과수원과 멀리 보이는 윤지미산

 영안동에서 장자골로 넘어 다니던 옛길(조산,돌무덤이 있다)

 무지개산(437.8m)

대간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으며 잡목때문에 시계도 없고  그저 그런 산이다

그러나 (상주 24  1881 재설)2등 삼각점이 있었다.

 무지개산에 갔다 오는길에 만난 하얀철쭉.

 그 아래 이상하게 생긴 나무

 윤지미산에서 만난 대원 (40여명중 제일 후미팀)

 판곡 저수지위 계곡

팔음산(유명산.762.3m)

 임도 만나기 직전 인삼밭(윤지미산을 내려와서)

 녹두색 병꽃

 윤지미산,

보긴 저래도 아주 급경사임,

한 나무에 두가지 색깔로 피는 병꽃 

 활짝핀 철쭉도 아름답다.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2008년 12월 개통됨)

 25번 국도상의 화령재 화령정

 넓은 광장이 있는 화령재.

저렇게 큰 표석이 오히려 과분한 느낌이다.

그러나 쉼터와 화장실이 있어 좋았고 특히 정자엔 비박지로는 1급지다.

 귀하다고 하는 흰색 민들레

 내려다 본 화서면 시가지

 이제 속리산 구병산도 잘 보인다.

 다음 구간 시작점인 비재의 철 사다리.

 

이제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것도 너무 지루하게 기다려진다.

그것은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과 하고자하는 熱意와 돈독한 대원간의 우정이 싹트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것이며 대원 스스로의 자신감도 생긴다는 뜻도 될 것이다.

이번 구간부터서는 속리산 권에 진입하게 된다. 학생으로 치자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같은 방법으로 신의터재(어산재) 소공원 앞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몸 풀기 운동을 시작으로 원색 복장인 대간종주 행렬은 一絲不亂하게 보기 좋게 줄 지어간다,

2주전과 지금의 산천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잠자던 나뭇잎이 대부분 깨어나 연 녹의 新綠을 만들어 포근한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農路우측으로 오르면 작은 밭들과 몇 기의 무덤들이 있으며 잔디도 많이 자라 제법 푸른 모습을 내는 것이 우리도 이제 완연한 봄의 중심에 서있는 기분이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 주변에도 계속 무덤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人家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바로 무지개산(437.8m)이다. 연봉은 큰 애기 가슴처럼 봉곳 솟아 있는 것이 初老의 종주꾼 마음마저 울렁이게 한다. 아름답다, 하지만 제아무리 아름답고 경치가 仙境이라 할지라도 어찌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야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여인을 모독하는 결과이지!.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나누자는 뜻으로 가 보기로 작정 말없이 방향을 잡으니 같이하던 일행중 산넘어님은 벌써 갔다오는 중 이었다, 그야말로 준족이시다. 

대간 길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어 힘들어 하는 자 에겐 한 발자국도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초반전이라 모두 싱싱하고 힘이 남아도는 것 같았지만  같이 가자고 권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여유있게 혼자 다녀왔다.

다음 어떤 기회가 있어 다시 보게 될지는 몰라도 지금에서 볼 때는 나무나  바위 하나라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면서 대간길을 종주하는것은 어찌보면 이제 그 대간을 정리하는 작업이라고도 할수 있을것이다,

나무들 사이로 가끔씩 속리산 능선이 보이기도 한다.

윤지미산(538m)이다, 동실동실한 것이 누에고치나 성숙한 여인의 가슴을  닮기도 했지만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윤지미산인지 모르겠다, 유명한 영화배우 김지미도 있었는데...........,

지장봉에 이어 윤지미산이 가까워지니 왼쪽아래 판곡 저수지도 조금씩 보이며 어느 순간 구병산(876.5m) 형제봉(806,3m)과 건너 대궐터산(두리봉, 877m)도 보이기 시작한다.

당진 - 상주 간 고속도로 터널 위를 지난다.

화령재다. 25번 국도가 지나며 이곳의 숨은 얘기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백산을 줄기로 남으로는 추풍령을 연이어 화령으로 불리어 왔고 북으로는 조령이 있으며

신라 때는 연비군, 경덕왕 때는 화령군, 고려 때에는 화령현으로 지금의 화서면이다.(택리지)

화령이란 지명은 고개이름인 화령에서 연유된 것이고 6,25당시 1950년 7월 수도사단 제 17연대(연대장 김희준)가 화서면 하송리와 화남면 동광리에 매복해 있다가 인민군 제 15사단을 전멸시키다 시피 하여 낙동강 전투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최대의 공헌을 한 전투현장이고

임진왜란때는 정기룡장군이 북상하는 왜군을 이곳 용화전투에서 크게 물리쳤다고 한다.

한편 김유신 장군도 삼국을 통일할 때 화령재에서 부터 시작했고 후삼국시대 견훤도 중요시했다는 그 천년의 싸움터인 화령재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과 팔각 정자가 있어 쉬어 가기도 했다. 火嶺은 불붙는 고개라더니 전략상 그렇게 중요한 위치인 모양이다,

화령의 옛 이름은 답달(물가의 산이란 뜻)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노간주나무(노성나무)가지에 나의 시그널이 3개 나란히 걸려 있다,

3,4,5차 종주 때 기념으로 걸어둔 것인데 6차 것은 준비를 하지 못해 같이 걸지 못하는 심정 서운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感悔가 교차 한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는 숲의 모습이 신비스럽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저렇게 좋은 모습으로 달라져야 하는데 朝變夕改라더니 쌓으면 더 높게 쌓고 싶고 오르면 더 높이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심이라면 그것을 탓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릴 땐 버릴 줄 알고 포기 할 때는 포기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이 기다려지는 시기다.

그나저나 전국 곳곳에서 산불들이 발생해 정말 큰일이다,

한번 불나면 복구 하는데 최소한 50년이 걸린다고 하니 한 평생이 걸려 만들어지는 숲이 순간적으로 없어지는 결과이니 한 순간에 잃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이 있지만 순간의 부주의로 평생조림 나무아미타불이 되지 않도록 우리 산을 좋아하는 사람부터 세심한 주의를 하여야 할 줄 안다.

산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 어쩔 도리 없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불만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을 하여야할 것이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575봉이다. 건너 봉황산이 하늘에 걸려 있다. 땀 한번 흘릴 각오로 만반의 준비다, 저 고개만 넘으면 비재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시작이 반이라 했는데 내려서며 다시 힘을 모아 땀 몇 번 훔치니 정상이다.

봉황산(740.8m)

여기서 1시간 30분이면 비재에 도착하고 또한 정상에서 왼쪽으로 산줄기 하나가 분기 한다. 급히 내리서는 지맥은 팔음지맥인데 천택산(883,9m), 팔음산(762,3m), 천관산(445,4m), 칠봉산(449.5m)을 거치는 55,5km의 산줄기다.

지금의 농촌엔 젊은 사람을 만나보기가 정말 힘 든다, 그래서 그런지 농촌이 옛날처럼 싱싱해 보이지 않는다, 과수원이나 들녘에 일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여 보는 나의 마음 또한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다.

하루빨리 농촌에도 젊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지금 농촌을 지켜주고 있는 이 사람들이 떠나게 되면 과연 농촌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여러 가지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정상을 향한 마음은 산꾼이 아니라도 오르고 싶어 할 것이다.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가 가슴속을 막힌 굴뚝 청소하듯 후련하게 털어줄 것이다, 이 맛으로 산을 찾고 또 찾게 되며 오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새것 보다는 헌것이 더 좋아 보일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헌것이란 오래된 것을 말한다, 단 사람은 오래 되어도 헌것이라 말하지 않고 늙은 사람(老人)이라고 불러 준다,

허지만 그 속엔 진실의 역사가 있고 말 못할 비밀도 있는 것이다.

산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급하면 이정표만 보인다고 한다.

나무도 꽃도 보지 못하고 하물며 산이 선물하는 山香도 느낄 수 없으니 자연이 무상으로 주는 그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산행을 한다는 것은 산에 있으면서도 산을 모르고 지난다는 그런 뜻이 되는 것이다.

현호색이 연약해 보이는 푸른색을 선물 하지만 곧이어 얼레지가 부끄러워 고개 숙인 채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몇 개의 암봉을 지나니 비재가 보인다. 비재는 날아가는 새의 모습 같다고 하나 어디서 보아야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조림지의 낙엽송이 당당하게 계곡을 지켜 준다, 잘 관리하면 저렇게 좋은 재목도 얻을 수 있는데 잘 못하여 불이라도 낸다면 정말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것이다.

과거 30 여 년 동안 화재 또는 벌목으로 없어진 임야가 40%가 넘는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국립공원만 죽자 살자 지킬 것이 아니고 전 국토를 공원화 할 계획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더 주력해 주시고 모든 산은 그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보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아직도 민둥산이 많으며 그 넓은 초지 같은 산에다 나무를 심고 가꾼다면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다소간 훼손되는 피해가 있더라도 이런 곳에서 충분히 보충하고도 남을 것 아닌가.

대간 길을 무조건 막아놓고 종주하는 사람을 범법자로 몰아 과태료란 허울 좋은 올가미로 돈을 물리는 행위 그만하고 2m정도의 폭으로 종주길만 준다면 백두대간종주를 마음 놓고 할 수도 있으며 국민의 건강과 浩然之氣도 키우며 애국애족의 기회도 가지리라 보아진다.

그것은 산림이 우리 인류에게 제공하는 무상의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며 자연보호도 앞장서게 되며 모든 자연의 감시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온실가스배출을 줄이기 위한 최대의 사업은 전 국토에 나무심기사업이다, 스스로 나무 한그루라도 심는 것을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지구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대간종주 막을 생각하기 전에 구체적인 홍보로 산림훼손 스스로 막을 수 있게 유도하고 많아서 남아도는 예산 등산로 및 기타 사업 꼭 필요한곳에 쓰도록 세심한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지리산의 곰, 산양, 대미산의 구렁이 등 이해 안가는 사업에 얼마만한 국비가 투자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소지가 있다고 생각 되어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오늘의 구간종주도 끝을 냈고 다음 5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대간의 꿈을 새롭게 한번 키워 보자,  날마다 분위기는 익어가고 즐거움과 낭만이 흐르는 백두대간 정말 기다려진다,

아름다운강산

출처 : 아름다운 강산 정병훈&하문자
글쓴이 : 아름다운강산 원글보기
메모 : 백두대간 멘토 아름다운강산님의 신의터재-비재 산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