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원시 신방리 신방초등학교 옆 낮은 산비탈에 서있는 음나무들. 700년 생의 순환을 살아낸 음나무 고목은 이제 가시가 필요 없이 자유롭고 온유한 몸짓으로 남았다.
시골마을 길을 지나면 집집마다 키가 쑥 올라와 담 밖을 내다보는 나무들이 보인다. 감나무가 제일 많고 아마 그 다음이 음나무이지 않을까. 나무 전체에 빈틈없이 돋아난 험상궂은 가시 때문에 귀신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하여 옛사람들은 대문 옆이나 뒤뜰 담장 가에 음나무를 수문장처럼 세웠다.
산비탈에 드물게 4그루 무리 자생
가시돋친 어린 나무 모습 간데없고
원만하고 기품있는 둥치로 '우뚝'
저승사자나 질병을 옮기는 나쁜 귀신이 양반처럼 갓 쓰고 도포를 입고 펄럭이며 집안으로 들어오려다가 음나무 가시에 도포자락이 걸려 못 들어오고 그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상상이란 것도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재미있게도 우리들 조상은 나쁜 귀신도 자신들과 비슷하게 순박한 모습으로 그렸다.
잡귀가 범접치 못하게 음나무를 깎아 육각형 노리개를 만들어 아기 옆구리에 채워주기도 했다. 이 노리개의 이름을 '음'이라 불러 '음나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질병에 아기들을 잃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람들은 별달리 대책이 없었다. 오직 하늘과 땅, 영검 있는 자연에게 기도하고 모든 일에 삼가며 살아갈 뿐이었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방법이 많아진 것도 같지만 생각하면 고통 앞에서 사람이 할 몫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음나무는 가시가 위엄 있다고 엄나무라고도 부르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엉개나무라고 많이 부른다. 봄에 이 가시투성이의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순을 데쳐 먹으면 미풍처럼 보드랍고 향긋하다. 5월쯤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엉개나무 순'이라며 짚으로 굴비처럼 엮어놓고 판다.
새순이 맛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동물들이 다 먹어치우면 제대로 클 수가 없어서 자기를 지키는 생존 수단으로 음나무는 이렇게 가시들로 무장을 하였다고 본다. 세월이 지나 동물들이 도저히 뜯어먹을 수 없을 만큼 커지면 그렇게 틈도 없이 돋아있던 가시도 어느새 눈 녹듯 없어진다. 가까이 가기 살벌하게 가시가 돋아있던 줄기가 신기하게도 등을 기대고 싶게 원만하고 기품 있는 나무둥치로 되는 것이다.
이런 음나무가 무리지어 자라는 곳이 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가는 길 가에 있는 신방마을, 신방초등학교 옆 산비탈에 음나무 고목 네그루와 어린 나무들이 함께 서있다. 원래 음나무는 외따로 서서 살아가는 걸 보게 되는데 이곳처럼 무리지어 있는 곳은 드문 경우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니는 도로 옆 낮은 야산에서 음나무들은 가지가 번성하여 아래쪽으로 굽어보고 있다. 먼빛에 보면 잎들만 빼곡하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굵다란 몸통과 사방으로 벋은 가지들로 신령스러운 한 세계가 그 안에 있다. 줄기만큼 굵은 뿌리가 완강하게 뻗어 흙을 움켜쥐고 있는 게 그대로 지금 휘몰아치는 물줄기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꼬부랑 할머니 같은 나무줄기에는 아래로 더 떨어지지 말라고 지줏대를 받쳐놓았다. 철책 가 잡목 사이에 발자국들로 벗겨진 황톳길이 나무 밑까지 닿는다. 700년이나 되었다는 네그루 고목은 세월의 담금질을 이겨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유장한 몸이 되어있다. 오히려 더 튼실하고 자유로운 곡선―오랜 생의 의지가 쌓인 줄기와 가지는 성스러운 노래가 되었다. 거기에는 가시 돋쳤을 때의 어린 음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잎만이 같아 보일 뿐이다.
긴 잎자루 끝에 달린 손바닥만 한 별 모양의 잎사귀들이 쏟아 부은 듯 하늘을 덮고 있다. 초록빛별이 총총하다. 간혹 노랗게 곱게 물든 별들도 섞였다. 이 빛나는 성성함도 어느 가을날 놀랍게 다 떨어지고 빈 하늘이 되겠지. 생의 속절없는 흐름을 노거수는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만 우리는 또 오래 쓸쓸할 거다.
나무둥치 아래는 한해살이풀과 성마르게 떨어진 마른 잎들이 푹신하게 깔려있다. 옆에 손자를 눕히고, "그래 가지고 또 한 고개를 넘어간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겠노?"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장난스럽게 풀어내는 할머니에게서 맡던 미덥고 푸근한 냄새가 난다. 1900년대인 일제초기만 해도 신방초등학교 바로 앞까지 배가 드나들던 작은 포구가 있었다. 음나무가 선 이 낮은 고개에는 배를 타러 오던 상인들을 불러 모으던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먼 길을 걸어왔을 나그네들은 이 나무 둥치에 기대어 짚신을 벗고 노곤한 몸을 쉬다가 갔을까.
이곳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5분쯤 가면 주남저수지가 나온다. 거기,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서있는 버드나무와 저물 무렵 흰 새들이 날아와 저수지 속 나무가 흰 꽃으로 가득 피어나는 평화로운 그림은 우리 마음에 돋아났던 묵은 가시를 어느 결에 없애줄 것이다.
글·사진=이선형·시인 andlsh@hanmail.net
산비탈에 드물게 4그루 무리 자생
가시돋친 어린 나무 모습 간데없고
원만하고 기품있는 둥치로 '우뚝'
저승사자나 질병을 옮기는 나쁜 귀신이 양반처럼 갓 쓰고 도포를 입고 펄럭이며 집안으로 들어오려다가 음나무 가시에 도포자락이 걸려 못 들어오고 그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상상이란 것도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재미있게도 우리들 조상은 나쁜 귀신도 자신들과 비슷하게 순박한 모습으로 그렸다.
잡귀가 범접치 못하게 음나무를 깎아 육각형 노리개를 만들어 아기 옆구리에 채워주기도 했다. 이 노리개의 이름을 '음'이라 불러 '음나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질병에 아기들을 잃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람들은 별달리 대책이 없었다. 오직 하늘과 땅, 영검 있는 자연에게 기도하고 모든 일에 삼가며 살아갈 뿐이었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방법이 많아진 것도 같지만 생각하면 고통 앞에서 사람이 할 몫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음나무는 가시가 위엄 있다고 엄나무라고도 부르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엉개나무라고 많이 부른다. 봄에 이 가시투성이의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순을 데쳐 먹으면 미풍처럼 보드랍고 향긋하다. 5월쯤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엉개나무 순'이라며 짚으로 굴비처럼 엮어놓고 판다.
새순이 맛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동물들이 다 먹어치우면 제대로 클 수가 없어서 자기를 지키는 생존 수단으로 음나무는 이렇게 가시들로 무장을 하였다고 본다. 세월이 지나 동물들이 도저히 뜯어먹을 수 없을 만큼 커지면 그렇게 틈도 없이 돋아있던 가시도 어느새 눈 녹듯 없어진다. 가까이 가기 살벌하게 가시가 돋아있던 줄기가 신기하게도 등을 기대고 싶게 원만하고 기품 있는 나무둥치로 되는 것이다.
이런 음나무가 무리지어 자라는 곳이 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가는 길 가에 있는 신방마을, 신방초등학교 옆 산비탈에 음나무 고목 네그루와 어린 나무들이 함께 서있다. 원래 음나무는 외따로 서서 살아가는 걸 보게 되는데 이곳처럼 무리지어 있는 곳은 드문 경우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니는 도로 옆 낮은 야산에서 음나무들은 가지가 번성하여 아래쪽으로 굽어보고 있다. 먼빛에 보면 잎들만 빼곡하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굵다란 몸통과 사방으로 벋은 가지들로 신령스러운 한 세계가 그 안에 있다. 줄기만큼 굵은 뿌리가 완강하게 뻗어 흙을 움켜쥐고 있는 게 그대로 지금 휘몰아치는 물줄기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꼬부랑 할머니 같은 나무줄기에는 아래로 더 떨어지지 말라고 지줏대를 받쳐놓았다. 철책 가 잡목 사이에 발자국들로 벗겨진 황톳길이 나무 밑까지 닿는다. 700년이나 되었다는 네그루 고목은 세월의 담금질을 이겨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유장한 몸이 되어있다. 오히려 더 튼실하고 자유로운 곡선―오랜 생의 의지가 쌓인 줄기와 가지는 성스러운 노래가 되었다. 거기에는 가시 돋쳤을 때의 어린 음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잎만이 같아 보일 뿐이다.
긴 잎자루 끝에 달린 손바닥만 한 별 모양의 잎사귀들이 쏟아 부은 듯 하늘을 덮고 있다. 초록빛별이 총총하다. 간혹 노랗게 곱게 물든 별들도 섞였다. 이 빛나는 성성함도 어느 가을날 놀랍게 다 떨어지고 빈 하늘이 되겠지. 생의 속절없는 흐름을 노거수는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만 우리는 또 오래 쓸쓸할 거다.
나무둥치 아래는 한해살이풀과 성마르게 떨어진 마른 잎들이 푹신하게 깔려있다. 옆에 손자를 눕히고, "그래 가지고 또 한 고개를 넘어간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겠노?"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장난스럽게 풀어내는 할머니에게서 맡던 미덥고 푸근한 냄새가 난다. 1900년대인 일제초기만 해도 신방초등학교 바로 앞까지 배가 드나들던 작은 포구가 있었다. 음나무가 선 이 낮은 고개에는 배를 타러 오던 상인들을 불러 모으던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먼 길을 걸어왔을 나그네들은 이 나무 둥치에 기대어 짚신을 벗고 노곤한 몸을 쉬다가 갔을까.
이곳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5분쯤 가면 주남저수지가 나온다. 거기,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서있는 버드나무와 저물 무렵 흰 새들이 날아와 저수지 속 나무가 흰 꽃으로 가득 피어나는 평화로운 그림은 우리 마음에 돋아났던 묵은 가시를 어느 결에 없애줄 것이다.
글·사진=이선형·시인 andlsh@hanmail.net
오~ 천연기념물 164호.
수고 20m 가슴둘레 540cm
출처 : 卽時現今 更無時節
글쓴이 : 善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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