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행

가리산

後凋1 2009. 3. 3. 15:14

 

19154

 

새벽 4:30 자명종이 울린다.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바삐 엇저녁 아버님 제사를 마치고 늦게까지 챙겨 둔 산행차림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일산에서 이곳 안성으로 이사를 하고, 이삿짐을 정리하랴 이런 저런 일에 바쁜 중에도 이번 가리산 일정은 꼭 참석하고 싶었다. 2월의 마지막날 아버님 29주년 기일을 맞이하고 선친께서 거의 평생을 몸담으셨던 고향땅, 그리고 내 태가 뭇힌 땅의 鎭山格인 가리산 산행을 쉰 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하는 것은 뜻 깊은 일 아닌가? 늘 곁에 두고도, 그 산의 정기로 지금까지 건강함에도, 그 산의 품을 아직 찾지 않았으니... 꼭 오르고 싶었던 곳이다.

 

 9시가 조금 못 미쳐서 산을 오르기 시작. 날씨는 화창하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바람도 없고 완연한 봄날씨. 봄산행이다. 남쪽 사면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눈 녹은  길이 낙옆에 덮인 채 말라 있고 가끔씩 응달진 곳에 땅이 조금 질척하여 미끌미끌하다. 50여분 부지런히 오르니 능선이다. 능선 위 서편으로  정상의 세암봉이 참나무 능선길 너머로 자태를 드러낸다.

 

       능선길 우편 산 북사면 저 아래로는 소양호가 어슴프레 보인다.

  등산길 여기저기 등산객들이 쉬어 갈 의자를 가공하지 않은 채 자연목을 이용하여 설치해 놓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그대로 인위적인 것을 배재하는 그런 안목이 있는 사람의 작품이렸다.

  암봉을 오르는 길이 험하고 가파르다. 그 가파른 길을 쇠 파이프로 연결하고 가공물을 최소와 하면서 훼손을 적게 한 것도 괜찮았다. 1봉에 올라 저편 주봉을 바라보니 이곳을 오르지 않고 직행한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이 곳을 내려가는 길이 험하고 중간의 우묵한 바위사이 절벽 앞에서는 잠시 오금이 저렸다.

 주봉에 올라서 서편의 산 줄기를 눈에 담는다. 맨 뒤의 우측 산줄기가 대룡산 그 왼편으로 연엽산 금병산 삼악산?  나중에 답안 채점은 할애비에게 맡기고... 그 산줄기 너미가 춘천시.

앞산 좌편 아래로 이어진 줄기 밑이 내가 세상을 만난 곳이다. 어머니 뱃 속으로부터.

조부께서 큰골이라고 부르시며 산에 올라 소나무 아람드리를 베어서 초가삼간을 면하고 버젖한 대간집을 지은 그 줄기다. 조모님이 저 가난한 질곡의 세월 누에를 치시며 골짜기 안으로 산뽕을 채취하러 가시던 그 계곡이다.

      산정에서 음료와 간식 과일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떠들석하게 정상의 즐거움을 나눈 일행이 바삐 하산을 하고, 아름다운강산님을 모시고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가파른 암봉을 내려오니 일행들은 벌써 눈에 안 보인다. 좌측으로 난 석청수 이정표를 따라 내려오니 바위 사이로 샘물이 보일듯 말듯 흘러 나오는 샘물터가 따스한 햇살아래 자리하고 있다.

   그 석간수를 생명의 양식으로 삼았을 나무 가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

   오늘 산행은 주말임에도 모처럼 호젓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강산님이 준비해 오신 커피를 마시며 봄이 오는 길목, 산정의 적막을 즐긴다.

      석청수는 바위틈을  흘러 나와 잠시 작은 접시크기의 홈통에 고였다가 다시 아래로 흘러 내린다.  차 안에서 나누어준 오늘 등산 개념도에는 이 석청수가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라고 적혀있다. 

가리산의 정기를 담은 이 샘물 한 잔을 안 마실 수 없으렸다...

 아름다운 강산님의 설명이다. 가리산 북사면의 물은 북한강줄기인 소양강으로 흘러 내리고 남쪽 사면의 물은 홍천강을 거쳐서 남한강으로 흘러흘러서 양수리에서 다시 만난다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아름다운강산님과 동행하면 내가 미쳐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보고 알게 된다.

유홍준씨의 글에  정선 아라리의 지세를 설명하며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라는 멋진 글귀가 있었는 데, 그 글귀에 감동을 받아 처에게 말했더니, '그럼 당연하지 산이 무슨 강을 건너고 강이 산은 넘고 우짜고 그래! 그게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되요' 하며 퉁명스럽게 당연한 걸 가지고 말장난이나 한다는 듯 핀잔을 들은 일이 생각난다. 늘 그렇다. 내가 괜시리 건공중에 떠서 사는 게지...

    산을 내려와 정상아래 물푸레나무 군락지 넘어 산정을 뒤돌아 본다. 늘 그러듯이...

      저 참나무는 어떻게 저 돌을 제몸속에 껴안고 지내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아픈 상채기를 안고 자람을 멈추지 않았구나.  너의 십자가?

         보기 나름.

 

 

 계곡엔 아직 잔설이 남아있고.

 산신제 제상을 진설한 뒤편 가리산의 영봉이 봄을 맞이하는 나른한 대기의 기운 속에  아련하게 올려다 보인다.

 층층나무 나뭇가지도 곧 싹이틀 붉은 나뭇가지를 한껏 봄기운 가득한 대기 속으로 촉수를 뻗치고 있다.

      시산제는 집사 춘자님의 주재로 경건하게 거행되고,

이어진 뒤풀는 집행부의 정성어린 준비로 푸짐한 성찬.

'위하여'를 세 번 연호하고...

제물의 맏형격 돼지머리는 죽음의 순간 목을 파고든 칼날에 간지러워 웃음을 머금었다고.

아름다운 강산님이...그러시네.

 내 본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데, 나를 욕되게하지 말라. 웬 배춧닢.

 

 여흥의 뒷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나와 갑장인 돌이돌이(도리도리?)님 이 차린 가리산 야외 돌이돌이cafe에 금새 여남은 명이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신다. 우리 산우들 각자는 늘 자기만의 특색있는 어떤 것들을 준비해 와서는 나누고는 한다.

산정에서는 아이리스님이 엿을 나누고... 그때 뭐라고 속으로 말했지?

엿 먹으세요!  ? 

엿 잡솨요! ?

?? 

우리 사는 세상,

우린 다양하게 자신이 가진 것은 나눌 수 있다.

양수리를 지날즈음, 어느덧 석양이다. 가리산 능선이 갈랐던 물길의 시원이 여기서 다시 만난다.

차창밖 일몰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석양모드로 바꿔 찍으려는데,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대, 사랑하는 이에게 주저할 시간이 없다네.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

Do it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