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09.6.14. 일
날씨 : 맑음
산행구간 :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 반야봉 → 삼도봉 → 연하천산장 → 벽소령산장 →
세석산장 → 가림 31km 산행시간 04:50 ~ 17:20 12시간 30분
저녁, 배낭을 싸고 처에게 주먹밥을 부탁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 내일은 30km 가까운 산길을 걸을테니 미리 잠을 자 두어 피곤이 쌓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지리산능선 종주길을 걷는다는 기대가 마치 초등학교시절 소풍을 앞둔 들뜬 마음같아 잠시 미소짓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아파트를 나서서 한적한 길을 지나 하행선안성휴게소 옆에 차를 주차하고 약속시간 10여분 전에 휴게소에 도착. 잠시 후 빈 자리가 없이 꽉찬 하나산악회 버스에는 낮선 산우들도 많다.
미리 차 안에서 준비를 마친 선두조는 준비운동도 없이 곧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왕봉까지 완주하는 팀이다. 잠시 몸을 풀고 장비를 챙기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노을2'님과 함께 잘 정비된 등산로를 오른다 성삼재 휴게소는 아직 어둠 속 20여분 정비된 길을 오르니 화엄사 계곡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화엄사계곡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새벽 어스름의 계곡 앞에 선다. 25년 전 은행 감사실에 근무할 때, 진주로 출장을 와서 마침 일요일이 감사일정에 끼여 있어 이곳을 찾았고 노고단에 힘겹게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이후 좀 더 산을 가까이 했더라면 더 지혜롭고 겸손한 삶 좀 더 원만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노고단까지 오는 길은 고도가 높은 데도 계곡물소리 힘차고 새벽을 여는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 가득하다. 동편으로 반야봉이 여명 속에 아름다운 자태로 곧 새 날을 들어 올릴 기미 모두들 발 아래 운무에 가득찬 봉우리들을 사진에 담기에 바쁘다 노고단을 지나 잠시 산허리를 돌아서 능선길로 올라선다. 능선길은 키높이 자란 잡목으로 우거져 있고, 온갖 새들이 반겨 노래한다. 그들의 지저귐은 언제나 정신을 맑게 한다. 인간의 언어 와 문자, 그 부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저들의 노래. 잠시 인간의 언어영역의 한계를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사고의 표현 그리고 소리를 단지 극히 일부만 전달할 수 있는 게다. 저 아름다운 지저귐을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 저마다 저마다의 인식기능으로 알아듣는다. 어떤 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여 '홀~딱 벗어'새도 한 번 그 지저귐을 그리 들으면 그렇게만 들리는 인간 지각능력의 왜곡이라니... 왕시루봉능선이 남으로 영봉들이 우뚝 우뚝 솟은 운무 속으로 내닫고 서편으로 방금 지나쳐 온 노고단이 영롱한 아침 햇살에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거진 잡목사이로 가끔씩 샛길이 있는데, 얼핏 그 곳으로 내좋은 사람과 잠시 들어가고픈 생각. '우심깜뽀까?' ... 너무 고전 버젼? 우거진 숲길을 지나친 곳에서 잠시 아침 화장. 능선 위 해가림을 안 되는 곳을 지날 때를 대비하여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른다. 빨리 피부가 노화되지 않기 위해선 남녀가 따로 없다. 검버섯 핀 얼굴 어느 줌마가 좋아해. 돼지령 부근이었던가 일행이 남으로 탁 트인 전망대에서 사진들을 찍고 다시 한참을 걸었는데, '청솔'님이 "어 내 장갑?" 하더니,그곳에 장갑을 떨어뜨렸다고 되돌아간다. 꽤나 값진 장갑이려니. 한참을 왔는데 되돌아 찾으러 가는걸 보면... 한 참 후 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미소지면 나타난 '청솔'. "일회용 목장갑"을 찾으로 그 곳까지 되돌아가다니. 아! 이 아줌마가 갑자기 매력 넘치는 여인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되찾은 목장갑.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장갑이렸다. 우린 너무 쉬이 소비를 한다. 마구 풍족하게 일회용으로 낭비를 해댄다. 때로 저 배고프고 헐벗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죄스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목장갑 패션은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추기고
노루목을 조금 지나쳐온 곳에서 잠시 일행들의 의견이 갈린다. 반야봉을 가자느니 그냥 지나치자커니. 늘 어떤 상황에서 더 적극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후회가 안되는 법. '여니'님의 동의로 일행 모두가 반야봉을 향한다. 오늘 구간에서 2km 이상 더 걷게 된다. 바로 가파르게 올라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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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정상 조금 아래 성삼재에서 노고단 까지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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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정상부근에서 내려다본 남녘 운무 속 준봉들
' 般若' 지혜다. 지혜라는 게 삶의 번다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어떤 자리라 한다면. 지리산 영봉들 중 반야는 해서 대간 마룻길에서 한 켠으로 슬쩍 비켜서서 지혜봉임을 드러낸다 .
먼 산길 간다고 달랑 주먹밥 세 덩이만 챙겨서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고 요령을 부렸는데, 일행 중 유난히 큰 배낭을 메고 계속 앞서 가던 산우가 이곳 정상부근에서 쉬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배낭에서 꺼내어 놓는다. 거기에 더하여 '공허'님 '레몬트리'님도... 힘든 산길 배낭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는 나눔의 기쁨을 아는 멋쟁이들..
덕분에 푸짐한 반야에서의 아침식사. 고마웠습니다. 그대들, 성찬에의 초대
동편으로 마룻길 저 너머로 천왕봉이 우뚝 서있다.
반야를 내려와 다시 주능선길에 합류
남으로 불무장등능선을 경계로 좌는 전라남도 우는 경상북도 북으로는 전라북도
동편 가야할 능선길에 토끼봉 우뚝 앞에 서있고
지나온 능선길 저 너머 노고단 성삼재 능선이 구름 위로 이제 꽤 멀리 보인다
여전히 가물가물 먼 능선길 너머 천왕봉
'펭귄아빠'의 표정은 늘 살아있다. 저 어릴적 개구쟁이의 그 모습이 그대로...그의 화난 표정을 어떨까? 상상이 잘 안 된다. 집에서는 늘 애처 공처 다정한 아빠? 아마 그럴게다. 이 시대의 멋진 남편 아버지의 전형이다. 난 어떤가? 너무 억세다. 꼰데다.
'장갑 Happening' 이후 자꾸 카메라가 그녀를 향한다. 옥룡골 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모습
'공허'님의 멋진 포즈. 옥에 티라면 굳이 찾으라면, .... 아랫배 조금 나오다.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반야봉을 들르지 않은 후발대가 먼저 도착하여 점심을 준비한다. 술을 나눈다.
누군가 술을 권하는데, 내가 거절을 한다. 아니 내가 술을 마다하다니? 힘든게다. 갈 길이 멀어 걱정도 되는 게다. 일행은 다시 벽소령 하산그룹과 세석대피소 하산그룹으로 나뉘는데, 지금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건 거림도착시간 4:30까지 무리라는 주장이 대세. 나는 주저하다가 세석을 고집하는 '활주로'그룹에 '청솔'님의 합류를 보고 용기를 내어 함께 한다. '활주로' 저 빠른 걸음에 겁이 나지만 그만큼 그에게 신뢰가 가고 어차피 내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해 보기로 마음 먹는다. 음식을 펼쳐 놓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예의 저 큰배낭의 멋쟁이가 불고기양념통을 꺼내 요리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아쉬운 한 잔을 뒤로 하고 벽소령을 향한다.
저만치 덕평봉 뒤로 천왕봉이 보이고
형제봉 산허리 돌아서 벽소령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흐르는 길목에서 잠시 목을 추기고.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여 볼일을 보고, 주먹밥과 간단한 식사를 각자 한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을 차리던 배낭이 큰 산우와 몸이 날렵한 여인이 벌써 도착한다. 그녀가 지난 번 이곳에서 세석까지 초행길의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활주로'대장을 선두로 출발이다. 활주로 청솔 나 그리고 오늘 저녁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새벽 일출을 본다는 '중사'라는 새 산우가 맨 뒤에 선다. 일단 내딛으면 늘 해내더라는 경험칙
이곳 능선구간은 모두 1500m 고도가 넘는 곳이다. 임도길을 따라 걷는 눈 앞에 덕평봉이 우뚝 서있다
날렵한 여인이 겁을 주어 많이 걱정을 했는데, 한 시간여 부지런히 걸으니 반가운 이정표가 얼마 남지 않은 행로를 알려준다. 그동안 오르막에서는 '활주로'와 '청솔'을 저만치 숲 속으로 잃어버리고 나서 한 참을 내달으면 그들이 기달려주고는 하며 보조를 맞추어 왔다. 지친 몸에도 잠시 쉬면 금새 기가 보충이 된다.내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잘 적응하며 강한 것 같다. 기분 좋다.
작년 가을 대덕산인가를 오르는 어느 구간에서 '청솔'님을 사진에 담다 거절을 당해서 무안했는데,
그동안 함께 땀흘리며 힘든 산길 걷다보니, 이제는 이리 멋지게 포즈를 취해줄 만큼 서로가 편해지기도 한 게다. 오늘 이 여인의 리드가 없었다면 참 힘든 길이었다
지리산 종주능선. '활주로'대장은 10여회 다녀 갔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좋은 사진을 담을 곳에서 잠시 쉬어 가곤 한다. 한참 일할 나이,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그런 시기. 지리산 능선길은 그의 심신을 단련시켜 주고 줄기차게 에너지를 보충해 줄 그런 공간이다. 차돌박이다
저멀리 천왕봉 아래 안부로 장터목산장이 눈에 들어오고,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저 아래 세석대피소가 가려져 있다
멋진 샷의 순간을 사진에 담겠다고 뒷걸음치다가 가시나무에 종아리를 긁혀 금새 붉은 피가 송알송알 솟아 오른다. 가끔씩 우리 몸의 방위능력을 테스트할 필요도 있는게다. 피흘린 만한 값어치의 사진이 되나?
그보다는 사진에 대한 욕심. 그게 내 맘에 든다.
잠시 뒤돌아서 서쪽편을 바라보니 지나온 능선길 너머 까마득히 반야의 모습이 아름답다. 먼 길 왔구나.
이곳에서 잠시 쉬며, 먼저 도착한 일행 4명과 합류. 커피 한 잔 마시고 거림골 계곡으로 내려선다.
濯足. 긴 여정 하루의 피로가 다 씻시는 느낌. 차가운 옥류에 발 담가 행복한 거.
지리산 계곡길은 참 지리하게 이어진다. 이정표의 거리표시도 이해가 안된다. 도상거리인지 실측거리인지 지친 몸에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우리 사회가 이념의 대립으로 이 곳 산하가 피 흘리는 격전지였던 역사의 한 때 이 곳에서 숨어지내며 고립무원의 투쟁을 하다가 절박한 마지막 순간들을 맞았을 고혼들을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지는 마음. 내 힘든 걸음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휴! 다왔다. 31.5km 12시간이 넘는 산행길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
이곳이 고향인 '영심'님이 정성껏 준비한 "덕산 막걸리" "인절미" "부침개" .고향에 터잡은 오라버니까지 합세하여 이 푸짐한 자리를 마련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다. 덕산막걸리는 아무나 쉬이 먹을 수 없는 명품이라지.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키어 목젖을 넘는 희열이라니...오늘 하루 쌓인 산행의 피곤이 씻은듯이 사라진다. Thanks '영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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