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대졸 중견행원으로 주택은행에 함께 입행한 동기가 108명이다. 그래서 108회라고 이름을 붙였다. 불가의 108번뇌가 연상되는 모임의 명칭이니 멋진 작명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제는 회원 대부분이 퇴직을 했고, 우리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의 한 축에서 금융업무에 묵묵히 종사하며 정년을 맞이하여 몇몇이 임피(임금피크)로 후선에서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이라 그동안 기쁜 일 슬픈 일에 서로 상부상조하고 우정을 나누어 왔으며, 정기적으로 년 4회 분기마다 만나서 한 잔 술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인지라 예전처럼 폭음을 하는 친구도 별로 없다. 그러니 술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건강을 생각해서 분기 1회 모임을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곳을 함께 걷는 것을 곁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그리해서 년전에는 년말 모임에북악산 성곽을 걷는 이벤트를 시행했고, 작년말에는 청계산 송년등산을 하였다. 올해부터는 매분기마다 함께 걷기를 시행하려 장소를 물색하려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이상회장과 약속을 잡고 고속버스를 타고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목진호 동기가 함께하여 일행 셋이서 이회장이 준비한 푸짐한 미꾸리튀김을 겸한 추어탕 점심을 먹고 진호형과 헤어져 동대문으로 향했다.
지난 번에 자하문에서 북악산을 넘어서 말바위까지 걸었으니 이번에는 그 다음 구간을 걷는 코스다.
지하철 1호선 1번출구로 나와서 180도 방향을 전환하면 동대문과 나란히 '낙산공원 1.2km'라는 안내판이 서편으로 보인다.
그 길로 접어들면 된다. 초행길이지만 성곽을 따라 걸으면 되니, 쉬이 오늘의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저녁 7시에 본 모임이 있으니 두 세 시간의 걷기코스를 생각하면 된다. 시계를 보니 2시 50분이다
추운 날씨 탓일까?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 없이, 모두들 저마다의 일에 바쁜 게다. 그래서 성곽을 끼고 이어진 길은 한적하기 그지 없다.
성벽을 따라서 천천히 걷는다. 영하 2~3도의 날씨다. 뺨과 귓볼을 스치는 바람이 차고 맵다
너무 한적해서 추운날씨에 더해 더욱 황량하다
동대문에서 완만하게 경사진 오르막길은 낙산의 능선길이다. 그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축성되었을 것이니 성벽의 양쪽은 산동네이다. 성 안이고 성 밖이고 오래된 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동네모습이다. 60~70년대에 지어진 집들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성 안으로 난 암문. 암문 저 편 안으로 들어가보니 오래된 산동네의 궁색함이 눈에 들어온다. 차량출입이 불가능한 골목길이 이리저리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이래뵈도 4대문 안' 하지만 또한 그 4대문 성곽의 동편 끝 가장 외진 변두리 산동네이기도 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낙산공원에 닿는다. 성 밖으로 벽을 따라 저 멀리 북한산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햇빛이 들지 않아 잔설이 남아 있고 한기가 더한 공간이다.
잠시 낙산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서편으로 인왕에서 북악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이어지고,
성벽 위에는 미처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고, 녹아내린 눈은 추위에 고드름으로 영글었다.
잔설을 머리에 인 성벽은 아래로 굽이쳐 북으로 휘돈다
남으로는 해(歲)를 넘은 지 얼마 안되는 경인년의 해를 머리 위로, 늦겨울의 햇살을 받으며 남산이 저 멀리 자리 한다.
성곽 안쪽으로도 길이 있는가 찾느라 낙산공원 안에서 혜화역쪽으로 10여분을 헤메다가 다시 되돌아 올라와서 성벽을 나와서 성벽 밖 길로 혜화문쪽을 향한다.
서울 성곽은 북으로 북악을 좌청룡 낙산 우백호 인왕산 안산인 남산을 휘돌아 18.6km라고 한다. 오늘 구간은 낙산에서 북악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낙산공원을 나서서 조금 내려선 곳 소나무 한 그루가 성벽틈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과 수평으로 섯다
그 삶의 의지에 새삼 뒤돌아 본다. 저놈 언제까지 저리 옆으로 뻗으려나? 지금 묘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성벽과 어울려 보존가치가 높지 않은가? 어느 시점 지주목을 받쳐 주어야 하나?.
북으로 난 길 서편은 성벽에 가리워져 눈이 그대로인 채, 바람마저 차다. 코끝에 닿는 냉기가 맵다
이 성벽도 헐벗은 백성의 수고스런 노역을 동원하여 축조하였을 텐데, 그들의 노역의 값을 그 빚을 그 왕조는 어찌 값하였는가? 외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여야 할 때, 지배계층은 늘 그저 버리고 먼저 도주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 성벽을 이용하여 외적과 싸운 기록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저 성벽은 다만 무지랭이 백성에게 군림하기 위한 벽일 뿐, 강한 외적의 힘에는 아무런 기능을 못한 것이다. 성벽으로는 적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또 어느 역사의 어떤 왕도 능히 성벽으로 그 왕조의 의연함을 지켜내지 못했다. 굴욕을 받아들이거나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그리 괜한 짓을 하는게다. 약한 자들을 착취하여. 지금도... 그리고 개개인도 마찬가지로... 그런 류의. 부질없는...
저만치 혜화문이 보이는 곳 130m 전방에서 길이 막힌다. 아마 여기서 저기까지는 사유지인 모양이다
한성대입구역쪽으로 산동네의 오래된 골목길을 내려선다.
이곳도 정부예산으로 사유지를 매입하여 성곽길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성대입구역을 건너 혜화문에 도착했다. 날씨가 춥다. 처가 전화로 추운 날씨니 일찍 귀가하라고 한다.
애초에는 여기까지 걷기로 했었지만, 지난 번 모임에서 말바위까지 걸었으니 여기서 걷기를 그만두면 중간에 건너 뛴 길이 마음에 걸려 찜찜해진다. 해가 아직 중천에 걸려있다. 조금 추운 날씨지만 말바위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는다.
혜화문을 조금 지난 곳에서 쭉 이어지던 성곽길이 왕복 2차선 도로로 끊어지고, 이어서 여기부터 성곽길은 잠시 실종된다.
세종시대의 축조형태인 성벽의 일부가 남은 채 교회건물인가 사유건물인가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곳도 실종된 성곽은 연립주택의 담벽 아랫기단을 떠받치고 있다
한 동안 실종된 성벽길을 떠나서 골목길을 걷는다. 혜화동쪽에 가톨릭대학이 있어선지 이곳에 수녀원과 선교회등이 여럿 눈에 띤다.
성벽 안에 자리했을 경신고등학교 정문을 왼편으로 끼고 지나친다.
실종된 성벽의 기단석들이 학교 뒷담으로 활용되어 있다
경신고등학교 뒷골목길을 나와서 도로를 건넌 뒤, 서울과학고등학교 입구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잠시 서성이다가 오른쪽으로 꺽으니 바로 끊어졌던 성곽이 다시 이어지는 이정표가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끊어져 소멸된 성곽에 대한 설명과 성곽안내판이다.
서울 과학고 뒷편 와룡공원으로 오르는 성곽의 안쪽 길. 이번에는 성곽 안으로 걷는다
20만명을 동원하여 12m 높이로 18km를 쌓고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시설물을 엄청난 노역으로 만들고... 그리고 외적의 침입에 화살 한 번 제대로 쏴보지 못하고는 버리고 도주만 했으니... 그런데도 어찌 그 왕조를 버리지 않고 계속 섬겼나 그래? 어찌 배반할 줄 몰랐나 그래? 그 알량한 지배계층을 저들만의 잔치를...
같은 성북동이지만 성곽바로 아래 음지는 가난한 산동네이고 저 멀리 양지바른 곳이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부자동네다. 이 곳을 재개발하여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지을 것이 아니라 점차 시의 재정으로 매수하여 이곳에 어울리는 공공시설을 건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닥다닥 주거시설만 지을 것이 아니다.
가난도 서러운데 한겨울의 태양마저 외면하여 따스한 빛을 일찍 거두어 갔다. 더 춥다. 어제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냉기가 감도는 가난이다. 하지만 미로처럼 난 골목길 막다른 곳 마다 번지표를 단 판자집이 정겹다. 저 가난했던 세월이 생각나기에...
붉은 점선구간이 실종된 성곽의 사라져간 공간이다.. 그 공간을 다시 복원하여 완성된 성곽을 그려본다.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지난 번 처와 함께 걸은 때는 이곳으로 내려가 성균관대 뒷편을 지나 혜화역으로 갔다
말바위로 오르는 길 중년의 커플이 정담을 나누며 내곁을 지나친다. 중년의 사랑의 대화는, 잔설이 남아 있고 잎떨군 참나무와 소나무가 적당히 섞이어 늘어선 이런 고즈넉하고 한적한 길에서 제격일 듯 싶다. 할말을 잃으면 잃은 대로 찬 바람 맞으며 그리 걸으며 뜨거운 잎김이 아닌 채...
성벽 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북악
성곽 안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
나무계단 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오늘 걸어온 성곽 길. 사진 오른 편의 저 멀리 언덕처럼 보이는 곳이 낙산공원. 사진 좌측 아래 과학고등학교 뒷편의 성곽길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걸었네...
성북동 부촌 저 너머로 서울 동쪽외곽을 감싸는 수락산과 불암산의 巖山능선이 이어진다
나무 난간을 따라 성곽 안으로 들어서니 서편으로 북악의 동쪽 사면이 눈에 들어오고 그 왼쪽으로 인왕산이 햇살에 부시다
해가 서편으로 많이 기울었다. 이제 삼청공원으로 내려간다
말바위 가는 길 조금 못 미친 곳, 서편으로 깍아지른 절벽, 잔설이 남아있는 바위 위에서 잠시 멈춰서서 숨을 들이 쉰다.
북악의 거대한 암봉이 여기 저기 작은 바위를 거느리고 이곳에 이르러 마지막 큰 바위를 두었으니, 하여 末바위
말 바위 전망대 안내판
남산 좌편 뒤로 청계산 우편 뒤로 관악산. 탁 트인 조망이다.
우로는 북악이 품어내린 남쪽 능선 그 뒤로는 인왕 右白虎
전망대 뒷편으로의 末바위 모습
한적한 늦겨울의 삼청공원 하산길
삼청공원 후문길을 통해 금융연수원 앞에 도착 5시 10분이다. 오는 도중 모임을 갖을 몇 군데 식당을 둘러 보았으나 조건이 맞지 않는다. 2시 50분경에 떠났으니, 여기 저기 둘러보고 천천히 걷고도 2시간 남짓. 친구들과의 저녁 회식모임 전의 걷기코스로 적당할 듯 싶다. 이 곳 주변을 회식장소로 마음에 두는 건 80년대 초 이곳에서 여러 번 교육을 받고 책임자고시도 이곳에서 치르고, 초임대리 교육도 받고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동기들 모두에게 저나름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리라.
철따라 산과 들에서 나는 산나물 꽃과 야생의 열매로 효소를 담가 양념과 음식의 재료로 하는, 10년 넘은 된장으로 소박한 가정식 밥상을 차려 낸다고 한다는 소선재. 슬로우 푸드를 지향한다고... 저녁 회식을 할 장소를 물색하느라 몇 곳을 들렀다가 분위기 가격 장소를 고려하여 괜찮다 싶은 이 곳을 마음에 두었다. 바로 금융연수원 길 거너편에 있다.
서울역과 삼청공원을 10분간격으로 운행하는 마을 버스 11번노선도. 108동기들은 참고 하세요.
더 자세한 탑승장소는 인터넷 http://blog.naver.com/win6344win?Redirect=Log&logNo=150068530168 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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