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형,
요즘 참 적조했습니다. 이 저녁 열어 젖힌 아파트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까지 느껴지니 이제 여름을 마감해야겠군요.
열심히 폭염과 무더위 속을 발품을 팔며 다닌 이 여름이 내게는 무척 소중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서늘한 바람에 아파트 앞 공원벤치에 앉았습니다. 저만치 보행자전용도로의 한 켠에 아직 걷지 않은 고추멍석이 있어, 다가가 들여다봅니다. 계절의 변화로 여름의 습기가 가신 건조한 대기에 뜨거운 햇빛이 고추를 투명의 빨간색으로 바꿔 놓았군요.
"속이 투명하게 붉은 고추", 가을의 그 뜨거운 햇빛에 잘 말려진 고추를 본적이 있나요?
며칠 전 새벽에 잠이 깨어 아파트를 나서다 보니 뒷동 아파트 할머니들과 나이듬직하신 아주머니네들의 고추말리기 전쟁을 하시더라구요. 너른 공원 공간이지만 고추를 잘 말리기 위해서는 하루종일 햇빛이 들어야하고, 길가한편으로 있어 통행에 방해가 안되고 행여 행인들의 발길이 고추멍석을 망가뜨리지 않을 장소, 혹여 지나는 비라도 있으면 얼른 걷어서 피할 수 있는 장소가 갖추어진 곳. 이런 여러 조건을 갖춘 공간이 그리 많치 않다보니 시골생활이 몸에 밴 이 부류의 아줌네 할먼네들에게 고추 말릴 장소 확보전쟁이 있었던 것이지요. 먼저 새벽같이 나와서 어제의 기득공간을 무시하고는 찜해 놓은 공간에다 벌써 고추를 다 널고 간 신참 어떤 욕심쟁이 부지런한 아주머니와의 다툼과, 싸우지 말라고 새벽에 시끄럽게 싸우면 아파트 젊은 것들이 동사무소에 신고하여 고추도 못 말리게 된다커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추 하나하나를 물건진열하듯 가지런히 널고 있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봅니다. 조금 있자 70은 되었음직한 노인장이 아침산책길에 기웃기웃하시더니 고추 말리는 데 손이 참 많이 간다고, 고추 말리기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요즘 시장의 고추는 다 쪄서 말린 거라죠. 쪄서 말리면 어떠냐니 고추의 매운 맛이 제대로 안 난다나요. 빨간 생고추를 초가을의 건조한 뜨거운 햇빛아래서 이런 정성으로 말렸을 때, 제대로 고춧가루 맛이 나고.... 그리그리 음식의 각종 조미료들이 이런 정성으로 만들어져서 옛 여인네들의 손맛이 되는 게 아닌가 새삼 깨달아집디다.
김형, 통 말이 없으니 자꾸 묻기도 뭐하고, 사업은 잘 진행 중이신지..
당장의 생산은 없더라도 김형의 젊은이들과의 그 사업이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끔 동화형 행동과 말에, 도량에, 자식에 대한 배려, 품 넓은 마음 씀씀이에 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이 여름 몸은 좀 피곤했지만 아들과의 전쟁에서도 어떤 돌파구를 찾아가는 듯 해 기쁨을 느낌니다. 어려움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거 같군요.
바쁜 이 번 주를 마치면 가을맞이 한 잔 자리 만드십시다.
환절기에 댁내 두루 건강에 조심하시구요. 현우 수영실력향상 다음에 더 자랑 좀 하시구요. 2001년 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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