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재(어평재,31번국도,936m)-수리봉(1,214m)-창옥봉(1,238m)-만항재(414지도, 1,330m)-함백산(1,572.9m)-중함백(1,505m)-자작나무샘터- 양지촌- 정암사- 고한리
연초 연 이은 맹추위 속에서도 함백은 산행에 꼭 맞는 햇살과 적당한 추위로 아름다운 눈길 허락해 주었다.
함백의 능선길 발 밑에 부서지던 백설의 그 감촉이라니... 내 생애 다시 이런 아름답고 행복한 눈길을 걸을 수 있을까?
산행 들머리 흰 눈에 덮인 낙엽송 군락지
저 멀리 능선을 휘돌아 간 곳에 함백이 우뚝 서있다.
조릿대 마루길 흰눈 위로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 북행이다.... 잠시 잠시 일행들과 떨어져 이렇게 내 그림자를 벗하여 걷는 기쁨이 또 색다르다.
동심으로 돌아간 여심이 고요한 유택의 정적을 깼다.
흰눈을 이불처럼 덮고 나란히 누워 저승의 평안을 누리는 유택의 평안...
지천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하얀 눈밭에 서면 동심이다. 그저 더없이 좋은 악동이고 소녀다.
만항재를 지나 함백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눈길, 함께 오늘의 음모를 나누던 두 악당 활주로 도사님이 후다닥 앞장을 선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따라잡기 힘들다. 어느 새 언덕 능선 위로 사라졌다.
더없이 파란 하늘 아래로 함백의 정상으로 오른는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咸白" '모두' 咸이다.'다' 咸이다. 오늘을 위한 이름이런가. 발아래 함백이 거느린 산하가 모두 하얗다. 백설이다. 하여 오늘에 함백의 이름함이 눈 부시게 하얀 백설 위에 그러하다.
정상에서 서편으로 1408봉 장산줄기가 역광 속에 우뚝 서있고
남쪽으로 太白의 장군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함백 정상 근처에서 내려다보이는 국가대표선수을 훈련캠프
정상을 조금 내려서서 등산로를 살짝 비켜선곳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안 닿은 곳에 싸니윤님이 함백노천카페를 차리고는 일품인 커피를 건네준다. 아으! 그 맛이라니...이 여인은 그래서 이리 늘 예쁘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눈길을 돌리니 눈밭 위의 아름다운 자태. 참을 수 없는 넘어뜨리고 싶은 유혹... 부셔버리고 싶은 어떤 균형.
저 앞에는 함백 투리조트의 스키장이 보인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저기까지 함 굴려볼까?
잠시 도사님과 눈길을 나눈다... "Are you ready?" OK 사인에 "Action!" 사전에 나눈 각본대로 그녀를 위한 한 장의 추억을 만든다. 백설 위의 카니발을 ...
잠시 싸니윤과 청솔님을 눈 위에 밀쳤는데, 청솔님은 감기에 드셨다고... 하니 희생양은 싸니윤 그대뿐...이 좋은 챤스에 조금 미진한 채 그칠 수는 없는 법. 그리하여 2차로 이어진 그녀를 향한 눈폭격. 잠시 침묵으로 수세에 몰리던 그녀. 이어 그녀만의 진가를 발휘하는 야성이 폭발하였으니...
'안젤리나 졸리'는 저리 가라는 박력 넘치는 그녀의 패기...앞발 차기로 도사님을 3~4m 아래로 넘겨뜨리고 이어서 대쉬하여 기마자세로 짓누르기... 내 일찌기 그녀의 야성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오늘 이 함백의 정상에서 그녀의 거침없는 야성의 성정이 화산처럼 폭발하였으니... 하여 너무도 박력넘치는 활극 한 장면을 멋지게 연출하였는데, 활주로님은 그 멋진 장면의 동영상에 대해 판권을 주장하며 내게 건네주기를 거절하더라
잘못들어선 적조암쪽 계곡아래 정암사 가는 길 위에 거목의 잦나무가 창공을 딪고 꺼구로 서있다.
일행과 내려오다 소주 한 병을 마시려 들른 동네 어귀 구멍가게의 주인 손선화 할머니. 그녀를 만나려고 이 곳으로 내려왔나? 외서댁,함백댁,파주댁... 자기의 이름은 없이 그리 살아온 우리네 옛 여인네들의 질곡의 삶. " 잃어버린 '나' 찾기 운동"이 뭐야? 했다가, 곧 내력을 알아낼 수 있었다. 동네 부녀회에서 만들어준 문패라나... 나이를 묻자 일흔이시란다. 그녀의 선친께서 그 시절로는 깨인 분이라 고운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이름이 예쁘다고, 곱게 늙으셨다는 내 말에 " 이 인사가 사람 예쁜 건 알아볼 줄 알아서.." 라고 생각하셨을까? 처음에는 심드렁하시던 분이 드시던 밤과 대추를 나누어 주시더니 이내 봉지채 건네주신다. '선화' 할매 오늘밤, 밤이 이슥하여 태백선 화물열차의 바퀴소리 절그럭거리는 소리 들으며 혹여 탄광이 번성했던 시절 뭇남정네의 눈길을 받던 지난 세월을 벼갯녁에 묻고 계시지는 않으실지...
몇 년만에 찾아든 연초의 이어진 혹한 맹추위 속에, 이날 너무도 포근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허락했던 함백은 해가 지자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며 사위계곡의 냉기가 몸 속을 파고든다. 2년여 대간길을 걷고도 무심히 지나친 지도읽기로 엉뚱한 길로 하산하고는 씁스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걷는 기분은 영 찝찝하다.
이 38번 국도를 쭉 타고 가면 안성의 우리집 앞길이다. 오늘따라 따라지 국도번호가 느껴지는 건 잘못 들어선 하산길 탓이렸다.
'여행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민의 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산행기 (0) | 2010.03.17 |
---|---|
[스크랩] 덕항산 대간길 (0) | 2010.02.11 |
남한산성 (0) | 2010.02.11 |
[스크랩] 주왕산 (0) | 2009.11.17 |
백두대간 포함산 대미산 구간 (0) | 2009.10.12 |